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토스타인 베블런 - 유한계급론 제도학파institutionalist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인 경제학의 범주인 지대, 이윤, 노동비용 등을 벗어나, 사회의 법, 제도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토스타인 베블런은 구제도학파의 거장으로서, 마셜의 수요법칙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는 증가한다)과 노동자는 오로지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할 뿐이지, 일 자체가 좋아서 일하지는 않는다는 신고전학파 neo-classical school의 주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현실성 있고 적용가능한 경제 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해야 한다고 베블런은 주장했다. 베블런의 그의 첫 저서인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 '제도의 경제학적 연구 An Economic Sut.. 더보기 앨프레드 마셜 - 한계이론 앨프레드 마셜은 한계이론의 최초 창시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한계분석을 가장 명료하고 광범위하게 적용 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미시경제학 발전의 토대와 한계 전통을 확립했다. 또한, 앨프레드 마셜은 케인스 등의 20세기 대경제학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생동안 당시의 지적 조류를 한계정신과 함께 잘 반영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마셜의 한계이론은 경제학에 진화론을 적용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각각 경제 주체들(개인, 기업, 정부)의 역할과 결정을 면밀히 주시한다. 이윤이 비용을 초과할 경우 개개인은 자신의 상황을 검토하고, 새로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마셜은 개개의 기업들이 어떻게 환경변화에 대처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단기 (short run) - 생산자가 공급량 조절을 위한 대처할 여유가 있.. 더보기 자본주의의 붕괴 - 칼 마르크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최초의 역사적 행위는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생산활동 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진로가 노예제도로 부터 시작하여 봉건제도, 자본주의제도, 사회주의제도 순으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 진로는 추상적인 법칙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생산", 즉 구체적으로 "인간과 생산의 관계" 의 토대 위에서 진행된다. 모든 생산제도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낳으며, 각각의 시대는 이 두 계급이 빵(물질)을 빼앗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예, 봉건시대 - 지주 vs 소작농, 자본주의 - 땅/공장 자본가 vs 노동자) 지배계급의 생존여부는 피지배계급의 노동에 달려 있다. 하지만, 생산수단 (means of production)을 지배계급이 쥐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체제에 협.. 더보기 존 스튜어트 밀 1806년 영국 출신인 존 스튜어트 밀은 3살때 부터 아버지 제임스 밀로 부터 혹독한 조기교육을 받고 자랐다. 밀은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자유주의자 였다. 그는 중앙집권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전제를 경계했던 정치 철학자 였으며,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제도적 개선을 요구했던 정치가이다. 벤담과 밀 벤담은 인간사 모든 일이 "쾌락'과 '고통'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도덕적 기초를 주관적 판단이 아닌 '효용'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나는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의 최대 합산량이 최대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공리주.. 더보기 데이비드 리카도 - 자유무역론 데이비드 리카도 1772년 런던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에 증권거래소에 일하면서 부를 축적하였으며, 1799년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평론가로 데뷔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논쟁인 '지금논쟁' 신문투고를 통해 멜서스와 제임스 밀을 만나 교류하게 된다. 특히 밀과는 곡물법 반대, 의회개혁 운동등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배경 프랑스와의 전쟁 기간 동안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곡물수입이 끊어지자 영국 내 곡류 가격은 고공 행진 하였다. 전쟁 종료 후 시장 개방으로 곡물 가격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지주들은 정치인들에게 보호무역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한 산업혁명 주체인 신흥 부르주아들이 곡물가격 인상으로 인한 .. 더보기 맬서스 - 인구 폭발과 멸망의 예언 토머스 멜서스는 그의 대표 저서 [인구론]을 통해, 19세기 미래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사회 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 전망한 영국의 경제학자 이다. 1766년 2월 13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1784년 케임브리지 대학 저저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1788년에 졸업했다. 1793년에 지저스 칼리지의 펠로 (평의원)이 되었다. [인구론]은 그의 공식적인 첫 저서로서 1798년에 익명으로 간행되었다. [인구론]의 간행과 당대에 끼친 영향 토머스 맬서스의 대표작 [인구론]의 그의 아버지와 벌인 논쟁의 결과로 탄생했다. 당시 그의 부친은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낙관했던 콩도세르와 고드윈의 지지자 였다 . 즉, 산업혁명 초기에 대두한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개혁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인구의 증가는 노동력의.. 더보기 애덤 스미스 - 국부론,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과 도덕감성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아담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주로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이후 옥스퍼드 벨리올 칼리지로 갔지만 옥스퍼드에 실망하여 학위를 마치지는 못했다. 1750년 그는 데이비드 흄과의 교분을 통해, 역사, 정치, 철학, 경제, 종교 등 다방면에서 밀접하게 지적 교류를 하였다. 1751년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담당교수가 되었고, 이듬해 도덕철학 담당 교수가 되어 이후 10여 년간 명성을 떨쳤다. [철학자 스미스] [국부론]을 쓰기 전에 스미스는 윤리 문제를 다룬 [도덕감정론] 이라는 저서로 명성을 떨쳤으며, '철학자 스미스'로 불리기도 했다. [도덕감정론]은 계몽사상이 전통을 이어 받아, 이 책을 통해 도덕적 가치들의 논.. 더보기 이전 1 다음